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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1초를 잡아라 (임동승) 中

뻥까지마 2007. 7. 12. 13:51
 






1초를 잡아라
임동승| 삼성경제연구소| 1993.01.01 | 235p

 

4 1초를 잡아라  

 

 

 

1초라는 시간은 얼마나 긴 시간일까? 1초 동안에 어떤 일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우리 인간의 감각으로는 1초란 형편없이 짧은 시간이며 도대체 하나의 시간 단위로서 의미가 있을까 의심이 갈 정도이다. 마치 1원을 가지고는 아무것도 살 수 없으므로 1원짜리 동전이 거의 통용이 안 되는 것처럼 1초는 의미가 없어져서 통용되지 않는 시간단위가 되어 가는 느낌조차 든다.  

일상 생활 중에 초 단위를 가지고 진지한 말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농담이나 과장법으로 사용될 뿐이며 이를테면 빨리 오라는 말을 할 때 "0.1초 내에 와."라고 하는 식이다. 초의 시간단위는 아주 짧은 시간이라는 뜻으로 쓰일 뿐 실제적인 시간단위로서의 의미를 상실하고 있다. "돈이 없다."라는 말을 "1원도 없다."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하긴 우리들이 사용하는 시간 단위로는 초가 마지막이며 그것보다 더 세분된 단위는 없다. '초' 위에 '분'이 있고 '분' 위에 '시간'이 있으며 '시간' 위에 '일'이 있고 '일' 위에 '월'이, '월' 위에 '년'이 있고 그 위에 요즘 우리가 즐겨 사용하는 '세기'가 있다.  

옛날에는 초라는 단위가 없었으므로 가장 짧은 시간을 '순간'이 라고 불렀다. 순간이란 '눈깜빡할 사이'라는 뜻이다. 눈을 한 번 깜빡거리는데 걸리는 시간은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이 1초보다는 훨씬 더 짧은 시간일 것이다.  

불교에서는 시간을 초단위보다 훨씬 더 세분했다. 우리가 많이 들어 알고 있는 '찰나'라는 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시간의 최소 단위다. 120찰나가 1달 찰나이며 60달 찰나가 1납박이다. 납박이 곧 '경각'이다. 30납박이 1모호율다인데 다시 30모호율다가 1주야이므로 이로부터 환산해 보면 1찰나는 75분의 1초가 된다.  

흥미있는 것은 찰나의 의미이다. 찰나는 불교에서 결코 보잘것없는 부스러기 시간을 가리키는 단위가 아니다. 다시 말해 "0.1초 내에 와."라는 말은 할 수 있지만 "0.1찰나 안에 와."라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찰나는 초보다도 더 짧은 시간의 단위이지만 영겁의 비중을 지니고 있는 시간이다.  

불교에서는 모든 것이 1찰나마다 생겼다가 소멸하고 소멸했다가 생기면서 계속되어 나간다고 가르친다. 찰나를 짧은 시간이라고 하는 것은 고정관념으로 보았을 때 그런 것이지 실제로는 엄청나게 긴 시간일 수도 있다.  

1초 안에 어떠한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는가? 물론 담배 한 대 피울 수 있는 시간도 아니며 짧은 대화조차 나눌 수도 없는 시간이지만, 과연 짧기만한 시간일까? 우선 1초라는 것의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면 1967년 국제도량형총회에서는 다음과 같이 알쏭달쏭한 정의를 내렸다.  

 

〈초는 원자번호 133인 세슘원자의 바닥상태에 있어서의 두 초미세구조 준위 사이의 전이에 대응하는 복사의 91억 9,263 1,770주기의 계속시간으로 한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소리처럼 들리는데 중요한 것은 어떤 복사의 한 사이클이 92억 번 반복되는 시간을 초라고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1초 동안에 92억 번 반복해서 일어나는 사건이 있다는 얘기다. 이 사건을 감지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1초란 영원한 시간이 아니겠는가?  

정말 중요한 사건은 찰나 중에 일어난다. 우리는 우주의 수명이 150억 년이라고 알고 있다. 150억 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1초라는 것은 너무나 우습게 보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150억 년이라는 우주의 역사 중 최초의 1초 동안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규명하는 것이 현대 천문학의 최대 과제가 되고 있다. 150억 년을 해명하는 열쇠가 최초의 1초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태초의 3분간」이라는 책에 보면 우주 탄생 후 3분간의 시나리오가 나온다. 가장 초점이 되는 것은 우주 탄생 100분의 1초 경과 후이다. 바로 이 시기에 우주는 인플레이션이라는 엄청난 팽창 과정을 거치고 이로써 오늘날의 우주가 될 수 있는 기본자질을 갖추게 된다. 이 과정은 1초가 다 가기 전에 이루어진다고 한다. 이처럼 우주의 역사에 있어서 처음 1초는 그 이후 150억 년보다도 더 중요한 내용을 갖고 있다. 우주의 역사를 쓴다면 처음 1초에 대한 내용이 전체의 대부분이 될 것이다.  

모든 시간은 서로 똑같다고 할 수 없다. 그리이스 사람들은 시간을 크로노스 시간과 카이로스 시간이라는 두 가지로 나누었다. 크로노스 시간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시간, 일상적으로 흘러가는 있는 그대로의 시간이다. 거기서 모든 시간은 길이에 의해 결정되며 1초 1초 자연적으로 흘러갈 뿐이다. 그러나 카이로스 시간은 길이가 중요하지 않다. 여기서는 1초가 1년보다 길 수도 있고 1년이 1초보다 짧을 수도 있다.  

즉 카이로스 시간이란 찰나이면서 영원히 계속되는 시간이다. 예를 들어 4년 동안 피나는 연습을 한 육상선수가 올림픽 백 미터 결승에서 1등으로 골인하는 순간의 마지막 1초는 카이로스 시간이다. 전폭기가 목표물을 폭격하고 적의 사정권으로부터 빠져 나오는데는 불과 1초도 걸리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전폭기는 마하의 속도가 필요한 것이고 이 1초도 안 되는 시간 동안에 삶과 죽음이 갈리게 된다. 이것도 역시 카이로스 시간이다.  

인간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하루에 두세 시간만 되어도 많은 편일 것이다. 사람은 긴장하고 있는 것을 몹시 싫어하여 가능하면 편안히 있고 싶어 한다. 하루 세 시간만 정신 바짝 차려 일한다 해도 대성공일 것이다. 더욱이 사람이 모여 있는 집단에서는 한 사람이 정신을 차리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뜻이 맞아야 하므로 집단이 전력을 기울여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은 개인보다도 더 적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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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에게는 옛 그리이스인의 지혜를 빌려 시간을 이처럼 양적인 시간과 질적인 시간으로 나눌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일을 여덟 시간 했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 어떤 자세로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더구나 사람의 일생에서 황금기는 30세에서 45세까지 15년 정도밖에 안 된다고 한다. 결국 이 기간중에 시간을 어떻게 활용했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리질 수도 있는 것이다. 15년간의 시간활용이 70년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인생은 시간 단위로는 잴 수 없다.  

시간에 두 가지 종류가 있기 때문이다.  

매미조차도 양적인 시간과 질적인 시간을 엄격하게 구별한다. 매미는 굼벵이로서 8년간을 땅 속에서 살다가 어느 찬란한 여름에 땅을 뚫고 나와 매미로 탈바꿈한다. 그래서 한 주일 정도 목청껏 노래하다가 일생을 마감한다.  

8년의 무의미한 시간과 1주일의 생의 찬가가 매미의 일생이다. 8년을 어두운 땅 속에서 굼벵이로 지내는 시련 끝에 빛을 보는 것은 겨우 1주일이라니 매미가 불쌍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곤충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굼벵이의 시간 감각과 매미의 시간 감각은 완전히 다르다고 한다. 굼벵이는 시간을 매우 빨리 흐르는 것으로 느끼기 때문에 실제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굼벵이로서 지내는 기간이 길지 않다. 매미는 땅 속에서의 8년을 아주 짧게 느낀다. 그대신 여름을 노래하는 1주일은 매미에게는 땅 속에서의 8년에 버금가는 시간인 것이다.  

1초는 '0.1초 내에 오라.'는 농담에서와 같이 천대받아야 할 시간단위는 결코 아니다. 찰나 동안에 만물이 창조되고 소멸한다는 말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음미해 보아야 한다. 1원을 가볍게 생각하면 1억 원을 모을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가 가르치듯이 우리는 시간에 대해서 새로운 철학을 자져야 한다. 1초는 영원한 시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초관리란 하루 근무시간을 정신 없이 일하자는 것이 아니라 '집약적으로 효율적으로 일하자.'는 뜻이다. 초관리란 업무시간중에 크로노스 시간을 줄이고 카이로스 시간을 늘리자는 것이다. 1초가 한 시간보다 길 수 있음을 믿는 태도를 갖자는 것이며 1초 동안에 우주를 만들었다가 다시 부술 수도 있는 시간임을 깨우치자는 것이다. 이것을 한두 사람이 아닌 조직 내의 모든 사람들이 깨달을 때 조직은 폭발적인 힘을 낼 수 있으며 비로소 초관리 경영을 할 수 있는 기반이 갖추어지는 것이다.  

출처 : 책속에 감춰진 보물을 찾아서
글쓴이 : 독학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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